운동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근육은 강인함을 잃어가고 몸은 계속 퍼지기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모처럼 시간이 허락하는 하루 오전부터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늦게 잠들어버린 마당에 쉽게 운동을 갈 수는 없었다. 결국 오후에나 운동을 갔다.
운동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운동을 하다 허리를 살짝 무리한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의자에 앉아 있지만 허리가 아프다. 어머니가 들으시면 기겁을 하실까봐 말은 하지 않지만 역시 역기를 들어 올리는 동작은 허리를 많이 무리하게 만드는 것 같다.
육감이 너무 정확한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일까. 해리가 나와 맺어질 운명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겨난 것만 같다. 정말이지 해리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어만 가고 있다. 어제 밤만 하더라도 함께 여행가자는 이야기를 쉽게 했는데 그것이 늦게 cancel 되고 다시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해리의 문자로 잠을 깼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그에 대한 답장을 비몽 사몽 간에 보내고 다시 잠이 들었고 운동하기 전에 보낸 문자에 해리의 답장이 늦게 도착했다. 다시 내일 사진 찍으러 갈 수 있냐는 문자에 동아리 오티라는 이유로 거절을 담은 답장이었다. 그냥 예의상의 답장을 보내고 하루종일 서로 오고간 연락이 없었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도 않고 문자 하나 없다. 두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일찍 자거나 아니면 다른 바쁜 일, 즉 늦은 술자리에 아직 있다거나 다른 친구와 만나고 있거나. 만약 이 두가지가 아니면 고의로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 경우는 생각하기 싫다. 자존심이 상하니까. 문제는 내 스스로 별 감흥이 없다.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있다. 그것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면 할 말이 없다. 해리 역시 직감적으로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함께 있어도 별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그냥 일방적인 독백만이 계속 되는 마당에 무슨 관계의 발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린 모르던 사이로 되어버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 아카데미는 나에게 세상이 참 넓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어쩜 그렇게 나이도 어린 여자들이 똑똑하고 자기 생각을 당차게 표현하며 많은 일들을 이루고 있는지 알게해준다. 노골적으로 예림이에게 남자들이 구애를 펴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여자들은 그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며 예림이도 속이 좋아 마지못해 맞춰주기는 하지만 과연 그 속마음은 어떤지 알 수 없다. 문제는 나도 예림이에게 눈이 간다는 것이다. 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정말 예쁘고 멋진 여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이니까. 거기에 서울대 생이라는 조건은 날 솔깃하게 만든다. 서울대 인문대 생으로 1년을 다니다가 산업 대학에 교수 내정이라는 조건으로 옮겼다는 말은 그 독특함과 장래 보장성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우선 다른 이들과의 차별성이 흥미를 끈다. 더 알고 싶은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문제는 정치 아카데미에서 만난 여자들, 수진, 보람, 환희. 모두 매력있고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진 남자친구를 오늘 만났으니 수진에 대한 생각은 지극히 객관적으로 정립되어 간다. 멋진 여자와 멋진 남자라 생각한다. 수진의 남자친구는 듬직하고 신용을 갖게 만들어주는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었으니까. 보람과 환희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는데 보지를 않은 상태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냥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보람이에게 눈이 많이 간다. 묘한 매력을 주는 책임감과 leader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멋도 낼 줄 아는 모습에서 특히 매력이 풍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아이라는 생각까지만 하고 있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
예림이로 다시 넘어가면 아직 연락처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모든 남자들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면 그 친절이 나에게 전의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중락이 이미 나에게 예림이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고 정규 형 마저도 동시에 나에게 예림이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 놓아버리니 갈피를 못잡겠다는 것이다. 중락의 편을 들 것인가 아니면 정규형의 편을 들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다. 나 마저도 예림이라는 애가 가장 긍정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 문제는 커진다는 것이다. 뭐 좋아하는 감정에 어떤 규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나름 해리에게 정착하려 생각했던 내가 해리와 틀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여자에게 눈이 가고 그 대상이 예림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전체적 분위기에 옳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우선 예림이는 남자친구가 없고 나보다 3살이 어리다. 서울대를 다니다 산업 대학에 교수 내정자로 합류한 상태다. 이 조건까지 봤을 때 나와 어울리지 못할 이유가 하등 없다. 오히려 정치 아카데미 그 누구보다도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profile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profile은 profile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예림이와 관계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니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직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은 상태이며, 그냥 그런 생각이 스치는정도에서 멈추었다. 원래 육체적으로 매력적인 여자는 눈길을 끌고 알면 알 수록 육체적 매력을 더 넘어선 좋은 점이 발견되면 당연히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존재는 세상에 부지기수로 많고 예림이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우선 내 자신을 열심히 보이고 contact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 될 것이다.
늦여름에 비가 온다. 기분도 축 처지고 우울해지기까지 할 증조가 보이기도 하다. 내일 아침부터 과외를 해야 할 것이며, 지은이랑 영화 약속이 있다. 지은이랑 약속은 사실 그리 원치 않은 만남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자인 친구들을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을 저버려서는 안될 일이다.
지금 솔직한 심정은 누군가와 사귀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 말자는 것. 누군가를 억지로 좋아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으면서 요행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회를 만드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해리와의 그 만남이 우리 둘의 관계를 초기에 정립하여 규정짓기에 더 나은 기회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디까지나 해리와의 관계에 미련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열심히 나 자신을 드러내고 부딪치며 느껴야 할 것이다. 그 존재가 누가 되었던 간에 내가 그만한 매력과 가치를 스스로 내제하고 보인다면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왜 여자친구가 없냐고. 있을 것 같은데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돌이켜보면 고등학교까지만 하더라도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냥 매력 없이 공부만 잘하던 나였기에. 시간이 지나 지금 나이가 되어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주변에서 말하는 정도가 되었다면 그건 정말 성공한 것이다. 굳이 대학이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외모나 여러가지 조건들이 이성에게 매력을 끌기에 충분하다 주변인들이 인정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정도면 기쁜 일이고 이만하면 행복한 일이다. 좋다. 이대로 나를 더 채워나가며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그리고 그 사람이 다가올 때 스스로 느끼기를. 그럼 언젠가 운명의 상대가 찾아와 서로의 마음을 당기게 되고 그럼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머리로 다가가지 말자. 가슴으로 느끼며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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